루키우스의 기록
'파비트라 대 여제' 12화. 신대륙의 인물들
2014-06-18 09:12 조회 13135
파비트라는 알아흐리에게 예전에 자신이 임명했던 관리들 중 옥에 갇히지 않은 자들의 행방을 물었다. 당시 파비트라는 평민 중에서 인재를 뽑은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 하급관리였기에 그들 중에서 투옥된 자는 적었다. 그 중 성문 경비대장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네이건의 소식을 묻자 알아흐리가 대답했다.
“네이건은 종루를 지키고 있나이다.”
“종루? 화재가 나면 종을 울리는 곳 말인가?”
적절한 위치였다. 파비트라는 문제의 관리들에게 짧은 친서를 쓴 후 품에서 황제의 인장을 꺼내어 편지를 봉했다. 다할이 애타게 찾던 인장을 가져갔던 사람은 역시 파비트라였다.
“지금 곧 투옥된 마갈빈의 집으로 가서 그의 아들을 만나라. ‘내일 새 해가 뜬다’고 전하면 그자가 심부름꾼들을 구해줄 것이다.”
마갈빈은 비파 항구를 지키기 위해 남은 류이진의 가신이자 충복이었다. 류이진은 비록 함께 황도로 출진하지는 못했지만 파비트라에게 도움을 줄 자들을 미리 수배하고 준비시켜 놓았다.
친서들을 받아든 알아흐리가 걱정했다.
“폐하의 선견지명을 의심치는 않사오나 관리들의 마음은 모두 굳지가 못하니 이들 중 혹 배신할 자들이 있지 않을까 저어되옵니다.”
“아마도, 몇 명은. 상관없어. 배신자들이 다할에게 달려갈 즈음에는 이미 일이 끝나 있을 테니까. 하룻밤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깊은 밤, 파비트라는 알아흐리를 보내고 자신은 황궁으로 갔다.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순찰을 도는 수비대의 발소리만이 가끔씩 울렸다. 그들 중 몇몇은 뒤를 돌아보았지만 파비트라는 미끄러지듯 시선을 피했다. 황궁이 드리운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 파비트라는 성벽을 따라 걸으며 비밀 통로의 입구를 하나씩 찾아냈다.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는 폐쇄되어 있었다. 다할도 그런 통로부터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는 아니었다. 파비트라는 장식돌 밑에 감춰진 손잡이를 돌리면서 중얼거렸다.
“다할, 역시 너보다는 내가 더 황궁을 잘 알지. 안 그래?”
한때 파비트라는 황녀였다. 비록 황위 계승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하지만 그 시절 파비트라가 황위와 거리가 멀었다면 다할은 아예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황위에 손을 뻗었던 자들은 모두 죽고, 아무도 예상에 넣지 않았던 그들이 마지막 대결을 벌이려 했다. 아주 이상한 세월이 지나갔다는 생각을 누를 수가 없었다. 정당한 계승자란 대체 무슨 의미인가? 제국은 누가 다스리도록 예비되어 있었는가?
황궁 안은 고요했다. 다할이 이미 도망쳐버린 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파비트라는 자신이 다할이라면 택했을 곳, 과거 자신이 임신 중에 유폐되었던 별궁으로 나아갔다. 밤새 보초를 서는 수비대들이 곳곳에 불을 밝히고 있었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한때 그들의 황제였던 검은 그림자만큼 황궁을 잘 아는 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검은 옷을 입고 그림자를 밟으며 나아가는 파비트라는 흡사 황궁의 일부인 듯했다.
별궁에도 비밀 통로가 있었지만 예전에 파비트라가 탈출을 기도하다가 잡혔을 때 막혔다. 그래서 가장 안전한 장소이기도 했다. 반면 탈출할 길도 없었다. 파비트라는 들어가는 대신 숨어서 기다렸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멀리서 종을 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드디어 시작이었다. 곧 수런수런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일어나더니 전령이 별궁으로 급히 달려 들어갔다.
파비트라는 별궁의 처마를 타고 한 층 올라가 모퉁이 장식돌 뒤에 섰다. 정확한 지점은 성벽에 가려졌지만 희미하게 날리는 불티가 보였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은 점차 커져갔다.
지시대로 두 번째 불길이 남쪽에서 치솟았을 때 파비트라는 그 자리에 앉아 몸을 숨겼다. 얼마 후 세 번째 불길이 치솟았다. 황도에서 벌어진 소란이 황궁 안에서도 느껴졌다. 종소리는 더욱 다급해지고, 마침내 온 도시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나디르는 밤새 군대를 재우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세 개의 불길이 오른 후 얼마 되지 않아 케사드가 지키고 있던 망치의 문 쪽에서 신호가 나타났다. 문이 열리고 있었다. 나디르는 전군 진격령을 내렸다. 방어탑의 사각지대에서 기다리고 있던 케사드의 군대가 엄호하는 가운데 연의군 선봉대가 마침내 망치의 문을 통과했다.
“성문이 열렸다! 성문이 열렸다!”
당황한 외침이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이어 말발굽 소리, 창칼의 소리가 다가오자 공포가 거리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연의군은 파비트라가 당부한 대로 대항하는 자들만을 해치웠고, 질서정연하게 행군하며 최대한 파괴를 자제했다.
뒤따라 진입한 케사드는 성문을 열었을 침투조를 찾아 성벽 위로 달려갔다. 예상대로 격렬한 싸움이 벌어져 있었다. 이미 세 사람이 죽었고, 아게우스는 부상을 당한 채로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케사드는 아게우스와 싸우던 자들을 순식간에 해치웠지만 힘이 다한 아게우스가 쓰러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폐하는? 무사하신가?”
아게우스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지만 안심하라는 의미로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케사드는 죽어가며 웃는 자를 싫어했다. 죽고 나서도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었다. 마적 출신인 케사드와 어부였던 아게우스는 비파 항구를 공략할 때 만났지만 성격이 달라 대단한 우정을 나눈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사드는 아게우스의 손을 꽉 쥐며 소리쳤다.
“이 생선 냄새 풍기는 놈이! 벼락출세를 했으면 부자들도 좀 등쳐먹고 그래야지, 벌써부터 빌빌거려!”
아게우스는 다시 한 번 웃어보였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아게우스를 두고 일어난 케사드는 화를 누르지 못해 성벽 위의 경비병들을 모조리 해치웠다. 그런 다음 거리로 뛰어내렸다. 이미 시민들을 다치지 않게 하라던 파비트라의 명령은 안중에도 없었다.
파비트라는 별궁 안의 소란에 귀를 기울였다. 모두 분주히 뭔가를 챙기고 있었다. 이윽고 묵직한 짐들이 별궁 밖으로 나와 수레에 실렸다. 그 사이 파비트라는 창문을 통해 별궁으로 들어가 몇 개의 방을 거치더니 어느 방에 이르러 문을 닫고 돌아섰다. 그리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였다. 평민의 옷을 걸친 다할이 마지막으로 뭔가를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방을 뒤집어엎고 있었다. 그 꼴을 잠시 지켜보던 파비트라가 말했다.
“이걸 찾나?”
흠칫 놀라 돌아본 다할은 유령이라도 본 듯한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파비트라의 손에는 황제의 인장이 들려 있었다. 다른 손에 쥔 검은 다할을 겨누고 있었다.
본래 인장은 주궁에 보관되어 있었지만 별궁에도 비밀 보관실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다할은 그곳을 찾으려고 오랫동안 애썼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찾지 못했다.
“어떻게…….”
“네가 이걸 찾으려고 여기에 머물렀을 줄 알았지.”
다할은 칼을 뽑았지만 순식간에 다가온 파비트라가 쳐내어버리고 이어 목을 겨누었다. 다할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내가 소리치면 밖에서 들어온 자들이 너를 도륙할 것이다. 날 인질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 마라. 저들은 내가 죽으면 카타니아 황녀를 찾아갈 것이다. 반면 한 번 반역자가 된 이상 너와는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자들이지. 날 건드리면 우리 둘 다 죽는 거다.”
“저들에게 네가 없어도 그만이라고? 스스로 황제감이 아님을 폭로하다니 참 신선하네.”
다할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낄낄거렸다.
“그래. 난 아니야. 그 정도는 알아. 하지만 너도 마찬가지다, 파비트라. 우린 애초에 황위와는 거리가 멀었어. 이게 다 제국이 망할 징조였다는 생각은 안 드나?”
“전혀. 내 아버지, 샤미르 3세 폐하께서도 장자는 아니셨어. 누가 먼저냐 따윈 아무것도 아니야. 누가 황제가 되든 제국과는 상관없어. 제국은 황제를 삼키지. 너나 내가 다스리지 않아도 신민들은 영원히 살아가는 거야.”
“오, 황야에서 나뒹굴다가 오더니 이상한 종교를 창시하셨나? 하지만 난 신도가 될 것 같지 않은걸. 난 역시 제국이 곧 망한다는 쪽에 걸겠어. 너와 이스밀은 정말 집요했지. 대체 몇 번째야? 너처럼 끈질기게 제국을 망친 여자도 다시 없을 거다.”
그 순간 파비트라의 검이 다할의 목을 꿰뚫고 들어갔다. 다할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 가운데 파비트라가 말했다.
“제국은 너나 내가 무슨 짓을 하든 영원해. 널 굳이 죽일 필요도 없을지 모르지. 그렇지만 내겐 다른 이유가 있으니까 후회는 안 되는군. 배신한 주제에 감히 이스밀의 이름을 다시 입에 담아?”
칼을 뽑자 피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무릎을 꿇은 다할은 마지막으로 예언인지 저주인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이스밀의 자식이…… 황제가 되는 게…… 제국의 종말임을 알아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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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쉬뚜쉬
@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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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엘프
아 이제 제국 멸망 루트 타는거군요2014-06-18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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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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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사냥꾼
페레
ㄷㄷ 이제 전쟁을 시작하겠군.2014-06-1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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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어매니아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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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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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트라 ㄷㄷㄷㄷ 카리스마보소2014-06-19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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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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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굳2014-06-19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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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검
누이안
글이 이리읍냐 ㅠㅠ 아키야2014-06-2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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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엘프
이 정도 되는 스토리 글에 댓글이 이리 없는 것을 보니.. 이 때 이미 아키 빠져나갈 유저 다 빠져나가고 서버 안이 텅텅 비었었구만..2015-02-10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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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시커
@안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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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하리하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2015-02-25 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