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의 일기 - 끝 없는 집착

나나의 일기 - 끝 없는 집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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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정보

소모 노동력 : 25
필요 숙련 : 없음
제작대 : 인쇄기

원고 획득 정보

  • 증오 능력 각성 퀘스트 <증오를 일깨운 철벽> 완료

내용

#1

쫓기는 기분이다.
로사 언니와 함께하는 델피나드에서의 평화로운 생활이 곧 끝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에 맴돈다.
내 착각일 거라고 위안 삼아보지만, 이런 예감은 항상 적중해왔다.
내겐 로사 언니와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정말 소중하다. 그래서 난 이전보다 더 로사 언니 곁에 바짝 붙어서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란제브가 그림자 매의 집에 찾아와 마법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도 언니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란제브와 마법을 토론하는 언니의 눈동자에는 열망이 가득하다.

#2

카르페나움 출신의 드워프 올로가 아란제브와 함께 그림자 매의 집에 찾아왔다.
로사 언니와 함께 마법을 토론하는 멤버가 하나 늘어난 것이다.
언뜻 봐도 나보다 키가 작은 올로는 다부진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의 내면에서 넘실거리는 집착의 불길을 보았다.
저 불길은 내가 로사 언니에게 가지는 마음의 불길과도 같은 것이다. 언니가 지닌 마법에 대한 열망 역시 저런 색이다.
언니를 바라보는 진의 눈빛도 바로 저런 색상이다.
문득, 이 집착이란 건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로는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언니는 또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3

로사 언니가 에아나드에 간 사이, 흑야를 타고 타양과 함께 델피나드 순찰을 따라 나갔다.
대륙 곳곳에서 찾아온 사람들의 가슴에는 모두 저마다 비슷비슷한 색채의 불꽃이 넘실거린다.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은 조금이라도 더 비싼 값을 받기 위해 불꽃을 태운다.
예술인의 거리에서 커다란 돌덩어리에 망치질하는 조각가는 만족스러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불꽃을 태운다. 줄리아 1세 광장 주변의 의상실에서 옷을 고르는 여성은 더욱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불꽃을 태운다.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그런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데, 내 옆에 있는 타양에게선 그런 불꽃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그저 묵묵히 흑야 옆에 서서 델피나드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4

"타양은 왜 집착하는 게 없어?"
타양은 나를 내려보더니 두툼하고 거친 손으로 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나는 바람이다. 바람은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아."
흑야의 복슬복슬한 갈기 털을 매만지며 타양에게 물었다.
"그럼 흑야도 바람이야?"
타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흑야도 바람이지. 우린 바람의 형제란다."
"나도 바람이었으면 좋겠어."
타양은 나를 그윽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바람 같았다. 진도 처음엔 바람 같았지. 바람이 머문 자리엔 비가 내리고, 그곳엔 새싹이 돋아나지."
난 새싹인 걸까?
새싹은 자라나서 무엇이 되는 걸까?

#5

귓가에 메아리치는 심연의 목소리는 여왕에 집착한다.
아마도 그들이 갇혀 지내는 심연의 문을 오직 여왕만이 열어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집착했던 것을 얻게 되면 그다음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다시 바람처럼 자유로워질까?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를 집착하게 될까?
나는 집착의 끝이 궁금하다. 타양은 이런 내 고민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알려줬다.
"새싹이 나무로 자라나 열매를 맺어 씨앗을 뿌리면, 바람이 불어 그 씨앗을 다시 바람이 머무는 자리로 옮겨 새로운 새싹이 돋게 하지. 그게 바로 자연의 섭리란다."
자연의 섭리.... 그것은 운명을 지칭하는 또 다른 말이다.

#6

그림자 매의 집에서 아란제브가 기억술에 관해 이야기하자 올로가 열을 내며 토론에 참여했다.
그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연구하고 있었다.
과거로 돌아가 살해당한 자신의 가족을 죽지 않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가는 게 가능할까?
심연의 메아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여왕이여, 시간의 문을 여는 법을 익히시오.
여왕이여, 우리가 이곳에 갇히기 전으로 돌아가 우리를 구원해 주시오.
여왕이여, 당신이 과거의 우리를 지켜준다면, 여왕에 대한 집착을 버릴 것이오.

심연의 메아리가 집착을 버리면 나는 바람처럼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작은 희망의 씨앗이 내 가슴에 심어졌다.

#7

올로가 시간을 되돌리는 방법을 알아내길 기대하면서 그의 운명을 살폈다.
운명의 실타래가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하더니 올로의 주변에서 계속 빙글빙글 맴돈다.
실타래의 실이 올로의 몸을 칭칭 감더니 거미줄에 걸린 먹이가 고치에 둘러싸이듯이 올로의 모습이 고치처럼 변해버렸다.
흠칫 놀라 뒷걸음질 치다가 넘어지고 말았다. 불길한 예감이 가슴에서 치솟아 올랐다.
그림자 매의 집 1층에 있는 청동 거울 앞에 섰다.
거울엔 엉켜버린 실타래에 온몸이 칭칭 감겨 고치처럼 변한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8

울면서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보니 나도 모르게 벽을 넘어 심연에 와버린 상태였다.
너무나도 어두운 탓에 편안하고 아늑하게 느껴지는 이 심연에서 나는 몹시 자유롭고 편안하다.
심연에서 나는 형체가 없다.
나뿐만 아니라 이곳에 갇힌 뱀들 역시 형체가 없다. 심연은 그런 곳이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물질은 존재하지 않지만 정신은 존재하는 허상의 공간이다.
원래 이곳은 누구나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공간이었으나, 이프나에 의해 통로가 막혀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이 심연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건 세상에 나 하나뿐인 것 같다.
오직 나만 혼자 갈 수 있기 때문에 심연은 내게 편안한 안식처다.

#9

심연에서 돌아온 순간, 로사 언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게 보였다.
"또 다녀온 거니?"
"응."
로사 언니가 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돌아와 줘서 고마워."
따스한 로사 언니의 체온을 느끼며 나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차가운 전나무 성에서부터 언니는 나를 이렇게 자주 안아줬다. 세상에서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는 건 로사 언니뿐이다.
"언니가 여기 있으니까 돌아왔지."

#10

그림자 매의 집에 다시 올로가 찾아왔다.
이번엔 아란제브와 함께 온 게 아니었다.
그는 언니에게 미메탄의 마법사 레이븐에게서 전수 받은 마법에 시간과 관련된 것이 없는지 물어보았다.
혼자서 책으로 마법을 공부한 언니는 올로가 기대하는 것보다 레이븐의 마법에 조예가 깊지 못했다. 로사 언니는 한동안 기억을 반추하고, 책을 살펴보다가 결국 고개를 가로저었다.
올로는 포기하지 않고 언니에게 마법에 관련된 여러 가지 질문을 여섯 시간 동안이나 계속했다.
아마 진이 나타나서 시간이 늦었으니 돌아가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질문을 퍼부었을 것이다.
그는 시간이 흐르는 걸 잊은 듯했다. 시간에 관한 마법에 대한 집착이 시간의 흐름을 망각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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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자 : 블랑 @노아르타 | 55레벨 | 마법사 | 페레 (2016-07-18)
우수편집자 : 블랑54 @이니스 | 계승자 36레벨 | 정령술사 | 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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