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피나드의 가면무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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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

(사진자료 필요)


설명

  • 원대륙 유물 가구 28종 수집 업적 중, 델피나드 가면 시리즈 4종의 획득보상으로 얻을 수 있는 원고를 가지고 제작 할 수 있는 책으로, 델피나드 가면무도회의 실체를 써내려간 에아나드 마법사 수습생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책 내용

#1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그러나 그 비밀은 밝힐 수는 없다.
밝힐 수 없기 때문에 비밀인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길 원하는 욕구가 있다.
비밀을 간직하면서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언뜻 보면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델피나드에서 한때 유행했던 가면무도회는 바로 그런 모순을 현실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이벤트였다.

#2

어느 순간에서부터인가 델피나드에서 가면무도회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가면무도회를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순간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하면서 델피나드 곳곳에서 가면무도회가 열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면무도회라는 게 열린다는 사실이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지만, 사람들은 가면무도회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려 하지 않았다.
마치 가면무도회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끼리만 비밀을 공유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래서 나는 가면무도회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내가 가면무도회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된 건 바로 실체를 잘 모르기 때문인 것 같았다.

#3

내가 가면무도회에 참석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밤늦게 이용한 마차에서 이전 승객이 놓고 간 가방을 발견했다.
가방에는 광대의 모습을 한 가면과 함께 가면무도회의 초대장이 들어 있었다.
가방의 주인을 찾아주려 했지만,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단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잠시 가방을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이내 마음을 정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가면무도회에 가보자고.

#4

초대장에 적힌 주소로 갔다.
그곳은 델피나드 뒷골목의 허름한 식당가였다.
어둠에 동화되기 쉬운 짙은 색상의 로브를 걸친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뒷골목 식당가로 가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대부분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뒤집어쓴 로브 안쪽에 어렴풋이 화려한 색상의 가면이 엿보였다.
나는 조용히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어둠에 휩싸인 식당가 한구석에 긴 줄이 늘어져 있는 게 보였다.
초대장을 보인 후,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긴 줄은 지하도로 연 됐다.
비밀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비밀통로였다.

#5

어두컴컴한 통로에는 군데군데 촛불이 불을 밝혀주고 있었다.
대략 머릿속으로 숫자를 일부터 백오십쯤 헤아렸을 때쯤에 불빛이 번쩍이는 통로가 보였다.
비밀 통로를 빠져나가자 화려하게 꾸며진 커다란 방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방 한 편에 자신들이 걸치고 있던 짙은 색상의 로브를 벗어 던졌다. 로브를 벗어 던지고 밖으로 나가자 커다란 연회장이 나타났다.
연회장 한 편에 가면을 쓴 악사들이 매우 빠른 리듬의 경쾌한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다.
어깨가 절로 들썩이는 그런 연주였다.

#6

커다란 연회장의 중앙 홀에선 가면을 쓴 여러 남녀가 악사의 연주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그들의 춤사위는 일반적인 사교장에서 보기 어려운 몹시 외설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서로의 몸을 비비거나 더듬으면서 끈적끈적한 모습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춤사위가 마치 남녀의 성행위처럼 느껴져 내심 화들짝 놀랐다. 순간 가슴에서 열기가 솟아오르며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진정하지 제임스, 너에겐 사랑스러운 약혼녀 한나가 있어. 네가 여기 온 건 호기심을 느껴서일 뿐이야. 그러니 제발 좀 진정하자!'

#7

좌측은 흑색, 우측은 백색으로 칠해진 가면을 쓴 자가 나타나 나를 구석진 곳의 테이블로 안내했다.
아마도 안내인인 듯싶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안내에 따라 테이블에 앉은 자들이 안내인에게 금화를 건네는 것이 보였다.
나도 다른 이들처럼 안내인에게 금화를 건넸다. 그러자 안내인은 내게 '알레한드로'라는 글이 적힌 장갑을 주면서 말했다.
"안내자 알레한드로입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아무 안내인이나 붙잡고 이 장갑을 보여 주십시오."

#8

알레한드로가 와인과 음식을 가져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다른 테이블을 보니 가면을 쓴 남자와 여자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보였다.
나는 이곳의 룰을 모르기 때문에 무얼 해야 할지 난감했다.
알레한드로에게 살며시 금화 한 개를 건네며 말했다.
"내가 이곳에 처음 왔다네. 룰을 잘 모르고 있으니 좀 알려주게나." 알레한드로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내 곁에 다가와 조심스럽게 귓속말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 오는 분들은 대부분 초대받을 때 룰을 익히는데, 모르고 오셨다니 의외시군요.
원래 이런 경우에는 가면무도회에서 추방하도록 되어 있지만, 총독부 감찰관의 끄나풀 따위는 아니신 거 같으니 알려 드리겠습니다."

#9

알레한드로의 말에 따르면, 가면무도회에는 총 네 개의 가면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로 내가 쓰고 있는 광대의 가면은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 재주를 부릴 용의가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가면이다.
두 번째로 상인의 가면은 파트너를 구하기 위해 큰돈을 지출할 용의가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세 번째로 숙녀의 가면은 파트너와 함께 즐거운 밤을 보낼 생각은 있지만, 잠자리는 하지 않겠다는 걸 의미한다고 한다.
마지막 네 번째인 유녀의 가면은 아무런 제약 없이 방탕하게 잠자리까지 함께할 용의가 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연회장을 둘러보니 여성의 팔 할가량이 유녀의 가면을 쓰고 있었고, 남성의 경우엔 구 할 이상이 상인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알레한드로는 내 등허리를 떠밀면서 혼자 있는 여성에게 다가가 말을 붙여보라고 했다.

#10

가슴이 푹 파인 백금색 드레스에 진주 귀걸이를 한 여성에게 다가갔다.
여성은 붉은색 유녀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레이디!"
여성은 오른손을 내밀어 내 인사를 받아주면서 말했다.
"광대의 가면을 쓰신 분이라니 재미있군요. 어떤 재주로 내 마음을 훔칠 건가요?" 나는 그녀가 내민 손등에 입맞춤한 후, 오른손을 활짝 폈다. 그러자 손바닥에서 작은 불꽃이 나오더니 춤을 추듯 공중을 떠돌다가 새의 모습으로 변했다.
새로 변한 불꽃은 날개를 펄럭이며 그녀의 주변을 날아다니다가 테이블에 있는 촛불 속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견습 마법사인 내가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화염 마법을 살짝 응용한 재주였다.

#11

유녀의 가면을 쓴 여자는 손뼉을 치며 말했다.
"마법사로군요. 전 엘레나라고 해요."
엘레나는 최근 델피나드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연극인 '폭풍의 언덕'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이름이었다.
나는 센스 있게 대답했다.
"전 카멜롯입니다."
카멜롯은 '폭풍의 언덕'에서 엘레나를 지키다가 죽는 비극적인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었다. 나는 그녀와 홀에 나가 춤을 췄다.
서로의 내 몸 구석구석을 더듬거리는 여자의 손길에 가늘게 몸이 떨렸다.
여자는 그 모습이 즐거웠는지 내 귓불을 핥는 등 점점 대담한 행동을 해왔다.
결국, 그날 밤 나는 약혼녀인 한나의 존재를 망각한 채 자신을 엘레나라고 소개한 여성과 잠자리를 가지게 됐다.

#12

그날부터 나는 에아나드에서의 수업도 빼먹은 채 가면무도회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매일 밤 술에 취해 낯선 여자의 몸을 더듬으며 환락의 시간을 보냈다.
짜릿함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석 달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커다란 문제에 봉착하게 됐다. 유녀의 가면을 쓴 여자와 여느 때처럼 술을 마시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연회장에 딸린 숙박시설에 들어갔는데, 여자가 가면을 벗는 순간 나는 온몸이 굳어버렸다.
여자의 얼굴이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약혼녀 한나의 친구인 네페르티였다.

#13

네페르티 역시 가면을 벗은 내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란 모습이었다.
그녀는 피식 웃더니 내 몸을 끌어안고 키스를 퍼부었다.
당황한 나머지 나는 그녀의 손길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귀신에 홀린 듯 정신없이 일을 치른 뒤에야 이성이 돌아왔다.
몸에 흐르는 땀을 식히기 위해 가만히 누워 있는 네페르티에게 나직이 말했다. "말 안 할 거지?"
네페르티의 숨결이 귓가에 나직이 메아리쳤다.
"하는 거 봐서."

#14

네페르티는 한나에게 가면무도회에서 날 만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아마도 네페르티 역시 자신이 가면무도회에 간다는 사실이 비밀일 것이다.
그럼에도 한나를 볼 때마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혹시라도 네페르티가 한나에게 내가 가면무도회에 간다는 사실을 알리진 않았을까? 그녀가 내 이중생활을 알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두려움 때문에 점점 한나를 만나는 것을 피하게 됐다.
에아나드에서 시험이 있다는 등, 몸이 아프다는 등의 핑계로 그녀와의 만남을 차일피일 미루게 됐다.

#15

문득 이대로 한나와의 만남을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건 한나다. 가면무도회에서 만난 여자들은 하룻밤의 유희일 뿐이다.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는 오직 한나 뿐이다.
가면무도회의 비밀 때문에 한나를 만나면 불편하고, 차라리 네페르티를 만나는 게 편할 지경이지만, 네페르티는 그냥 평한 파트너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점점 마음이 편해졌다.
이런 내 생각을 네페르티에게 말하자 그녀는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부러운 걸, 넌 일상이 가면무도회야!"

#16

나는 얼마 후 한나와 결혼했다.
네페르티 역시 델피나드의 자산가와 결혼하게 됐다.
네페르티는 결혼한 뒤부터는 가면무도회에 발길을 끊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한나에게는 밤새 중요한 마법 실험을 해야 한다고 말하곤 곧잘 가면무도회에 가서 하룻밤의 유희를 즐겼다. 네페르티 말고도 가면무도회에서 아는 여자를 몇 명 만났다.
남편이 있는 유부녀도 있었고, 공주님처럼 순결한 여자라고 생각했던 이웃집 딸도 있었다.
서로 아는 사이였지만, 같은 비밀을 공유하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아는 사이라 더욱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17

그날도 나는 평소처럼 행동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한나에게는 실험이 있다는 핑계를 대고 가면무도회에 참석했다.
유녀의 가면을 쓴 여성에게 술잔을 건네고 몸을 부대끼며 춤을 춘 후, 자연스럽게 연회장 옆에 마련된 숙박시설로 발걸음을 옮겼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듯이, 유녀의 가면을 쓴 여성과 나는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런 자연스러운 흐름은 오랜 경험에서만 우러나올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가면무도회 경험이 얼마 없는 여성 보다는, 이렇게 경험이 많고 능숙한 여성을 좋아했다.
이런 여성을 상대하는 게 더 뒤탈이 없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18

숙박시설의 어두컴컴한 촛불 속에서 우리는 천천히 옷을 벗었다.
가면을 벗는 것은 항상 제일 마지막이었기 때문에 옷부터 모두 벗었다.
가면을 쓴 여자와 길게 입맞춤을 나눈 후 우리는 서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서로의 가면을 천천히 벗겼다.
은은하게 빛을 밝히는 촛불 속에 드러난 여자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심장이 멈춰버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유녀의 가면을 쓴 여자의 정체는 바로 내 아내인 한나였다.
이럴 수가!
가면무도회에 남편이나 연인이 있는 여자가 많이 참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한나는 그런 여자가 절대 아닐 거로 생각했다.
한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바람난 여자들과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믿음 깨져버렸다.

#19

결국, 결혼 생활은 파탄이 나고 말았다.
유녀의 가면을 썼던 한나의 모습 때문에 그녀의 모든 행동이 의심스럽게 여겨졌다.
정숙하게만 느껴지는 평소의 행동이 모두 위선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며, 차분한 말투와 예의 바른 행동들은 모두 유녀의 가면을 뒤집어썼던 자신의 본질을 감추기 위한 가면처럼 여겨졌다. 그러면서 그동안 한나와 함께 했던 모든 시간이 거짓으로 여겨졌다.
가면은 내게 자유를 줬다.
그리고 내 믿음을 빼앗아 갔다.

#20

가면은 우리에게 편안한 자유를 선물한다.
그 자유에 취해 가면을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
가면 안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 그동안 누렸던 자유가 족쇄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또다시 가면을 썼다.
매일 밤 가면무도회에 참석하고, 밝은 낮에도 가면을 쓴 채 살아간다. 이제 내게 여자에 대한 믿음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 밤엔 어떤 여자와 만나게 될까?
공허한 쾌락을 위해 나는 다시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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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자 : 쫄복 @키리오스 | 55레벨 | 흑마법사 | 엘프 (2016-09-27)
우수편집자 : 쫄복5152 @다후타 | 55레벨 | 흑마술사 | 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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