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안의 일기

마리안의 일기

#1

마리아노플을 지배하는 세 가문인 우리 트리스테와 노르예트, 위어드윈드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서로 피튀기는 전쟁을 할 수는 없어서 세 가문에서는 자신들의 딸을 두 왕관의 왕비로 만드는 방법으로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인다.
왕비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는 세 가문의 딸들은 그래서 모두 마리안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내 이름은 마리안 트리스테다.

#2

열두 번째 생일의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저택에서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파티가 열린다.
많은 귀족과 상인들이 선물을 가지고 찾아와 내 생일을 축하해준다. 모두가 내 생일을 축하해 주지만, 나는 전혀 기쁘지 않다.
열다섯 살이 되면 받게 될 두 왕관의 왕비가 되기 위한 시험이 이제 삼 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오히려 한숨만 흘러나온다.

#3

오늘은 날이 몹시 화창하다.
오늘처럼 화창한 날에는 여름잎 강가에 나가서 산책하며 잠시 숨을 돌리고 싶다. 그래서 고민 끝에 실베르타 부인의 예절수업을 빼먹었다.
아마 내일 엄청나게 잔소리를 듣게 될 거 같다. 그래도 오늘 하루쯤은 나 자신을 위해 휴식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
난 시계처럼 쉬지 않고 움직이는 기계가 아닌 누이안이니까.

#4

가문의 위신을 실추시킨다며 아버지에게 꾸중을 들었다.
실베르타 부인에게 잔소리를 듣는 것은 예상했지만, 예절수업을 하루 빼먹었다고 아버지가 이렇게 화를 낼 줄은 정말 몰랐다.
아버지의 꾸중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마르셀 오빠가 다가와 울고 있는 나를 달랬지만, 서러운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지른 걸까?

#5

나보다 한 살 어린 남동생은 친구들과 함께 별장으로 여행을 떠났다.
아버지는 사내라면 어릴 적에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가보는 추억을 가지는 것도 좋다며 동생의 여행을 허락했다.
그 순간 내 목구멍에서 <나도 가고 싶어요!>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6

초승달왕좌의 론반 공작 가문에서 릴리엇 구릉지에서만 구할 수 있다는 꿀을 보내왔다.
입안에 침이 주르륵 고이는 달콤한 향기 때문에 실베르타 부인의 예절수업 시간 내내 꿀 먹는 생각을 하다가 딴짓을 한다고 혼이 났다.
유모에게 부탁해서 몰래 꿀단지를 방에 가져왔다. 달콤한 꿀 덕분에 힘든 하루가 즐겁게 느껴진다.

#7

꿀을 많이 먹은 탓에 살이 쪗다.
뚱뚱한 것은 게으름의 증거라며 살찐 사람을 경멸하는 아버지 덕분에 나는 크게 혼나고 말았다.
나 때문에 몰래 꿀을 가져다준 유모까지 크게 혼이 났다.
그리고 이제부터 나는 더 이상 꿀을 먹을 수 없게 됐다.
밤에 몰래 꿀을 먹는 게 삶의 유일한 낙이었는데...

#8

사는 게 즐겁지 못하다. 온종일 예절수업을 비롯한 교양수업에 시달리면서도 먹고 싶은 음식조차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는 처지다.
살을 빼고 아름다운 몸매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요즘 계속 풀만 먹고 있다.
아버지는 마리아노플 밖의 빈민들은 굶주림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다며, 반찬 투정하지 말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밥을 먹으라고 말한다.


난 빈민이 아닌 트리스테 가문의 딸인 마리안인데…

#9

마르셀 오빠가 노르예트 가문의 장남과 결투를 벌였다가 큰 부상을 당했다.
아버지는 마르셀 오빠가 다친 것보다 노르예트의 장남에게 패배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피로 물든 붕대를 몸에 감은 채 풀이 죽어 있는 마르셀 오빠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난 마음속으로 외쳤다.
<오빠 힘내! 다음에 꼭 이기면 되잖아!>

#10

마르셀 오빠의 패배 후, 아버지가 갑자기 내 방에 찾아왔다.
아버지는 내 두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이제 우리 가문을 빛낼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 네가 열심히 노력해서 두 왕관의 왕비가 되야 네 마르셀이 실추시킨 우리 가문의 명예를 되찾을 수 있단다. 그러니 우리 가문을 위해서라도 노력해주렴!>
자상한 말투였지만, 내겐 너무나도 부담되는 말이다.


이 이상 어떻게 더 노력하라고?

#11

마르셀 오빠의 결투 패배 후, 내 하루 수업 시간표가 더 빽빽하게 변했다.
이전까지는 그래도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일곱 시까지만 수업을 받으면 됐는데, 이제는 아침 여덟 시부터 저녁 열 시까지 수업을 받게 됐다.
온종일 예절, 정치, 사회, 문화, 경제,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듣다 보니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12

새로 들어온 전속 하녀 줄리에게 온종일 왕비가되기 위한 수업을 듣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랬더니 줄리는 내게 굶주려본 적이 있느냐며 반문해왔다.
굶주림에 시달려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빈민의 삶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복에겨워 춤을 추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라 가슴이 확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13

보름에 한 번씩 하는 우유 목욕 시간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비릿한 우유향이 속을 메스껍게 만드는 탓에 우유 목욕을 한 날엔 밤잠을 설치곤 한다.
그런 괴로움을 호소하자 하녀 줄리는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했다.
" 지금 마리아노플 밖의 빈민가에 가보면, 아가씨의 피부를 위해 욕조를 가득 채운 이 우유 한컵에 몸을 팔겠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

울컥한 마음에 큰 소리로 외쳤다.
" 그래서? 어쩌라고? 내가 지금 하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거야? 나도 우유를 이렇게 낭비하기 싫다고! "

#14

내가 힘들 때 위로는커녕 항상, 복에 겨운 투정을 부린다며 비아냥거리는 전속 하녀 줄리가 싫다.
남을 괴롭히거나 싫은 소리 하는 게 싫어서 그냥 조용히 있었더니 너무 안하무인인 거 같다. 그래서 줄리는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녀가 가져다주는 음식 접시를 일부러 깨뜨린 후 다시 가져오라하고, 옷을 찢은 뒤 줄리가 찢었다고 속이기도 했다. 덕분에 줄리는 하녀 자리에서 쫓겨났다.

#15

시곗바늘의 초침처럼 쉬지 않고 온종일 계속되는 수업때문에 생긴 짜증을 하녀들에게 풀기 시작했다.
줄리가 쫓겨난 후, 무려 여덟 명이나 되는 전속 하녀가 모두 쫓겨났다.
가슴이 답답해서 속이 터져버릴 것만 같을 때마다 항상 하녀들에게 심술을 부렸다.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알면서도 계속 그랬다.
안그러면 내가 못 견디니까...
이런 내가 너무 싫다…

#16

노르예트 가문의 장남에게 당했던 패배를 씻기 위해 마르셀 오빠는 밤낮으로 검술 수련에 매진했다.
그리고 1년 만에 다시 노르예트 가문의 장남과 재결투를 가졌다.
마르셀 오빠는… 이번 결투에서도 패배했다. 노르예트 가문의 장남이 찌른 검이 오빠의 폐를 관통해버렸다.
마르셀 오빠는 일주일 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누이 여신의 품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17

마르셀 오빠가 누이 여신의 곁으로 떠난 날, 아버지는 술에 만취한 모습으로 나를 찾았다.
" 마르셀이 우리 가문을 먹칠했다. 빌어먹을 노르예트 따위에게 죽다니! 그렇게 멍청한 녀석에게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이제 마리안 너밖에 업다. 마르셀이 깎아 먹은 가문의 위신을 네가 꼭 다시 살려내야 한다!"
마르셀 오빠의 죽음이 가져다준 슬픔이 아버지에 대한 분노로 변해버리는 순간이다.

#18

페트리크라는 음유시인이 새로운 음악 선생님으로 찾아왔다. 그는 보기 드문 미남자였다.
늙다리 선생들에게만 수업을 받다가 젊은 미남자에게 수업을 받으려니 절로 가슴이 떨려왔다.
온종일 계속되는 수업에 지칠 대로 지친 몸이 페트리크의 음악 시간만 되면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온다.
항상 웃는 얼굴로 음악을 가르치는 페트리크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19

요즘 옷장의 옷을 스스로 고르는 재미에 빠졌다. 전엔 그냥 하녀들이 가져다주는 옷을 무조건 입었는데, 이젠 내가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는 편이다.
좀 더 나를 예뻐 보이게 꾸며서 페트리크에게 잘 보이고 싶다.
남자들은 가슴이 큰 여자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난…
우유를 먹으면 가슴이 커진다는 말에 요즘엔 우유를 매일 서너 잔씩 마시고 있다. 이러면 좀 커지려나?

#20

코르셋을 이용해서 가슴을 돋보이게 한 후, 가슴이 푹 파인 드레스를 입고 페트리크의 수업을 받았다.
내 도발적인 모습에도 페트리크는 전혀 흔들림이 없는 모습이었다.
내가 아직 발육이 덜 돼서 그런 걸까…?
뭔가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페트리크가 나를 학생이 아닌 여자로 바라봐 줄까?

#21

하리하라 대륙에서 무역하고 돌아온 노르예트 가문에서 이니스테르의 장미로 만든 향수를 팔고 있는데, 그 향기가 너무나도 매혹적이어서 이니스테르 장미 향수를 뿌린 여성이 스쳐 지나가기만 해도 뭇 남성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고 한다.
아버지는 노르예트의 '노'자만 나와도 화를 내기 때문에, 몰래 하녀를 시켜서 이니스테르 장미 향수를 구해왔다.

#22

이니스테르 장미 향수로 페트리크를 유혹하려고 했지만, 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눈치채지 못하길 바랐던 아버지가 내 향수를 눈치챘다. 노르예트 가문이 들여온 이니스테르 장미 향수가 마리아노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노르예트의 성공에 분노했고, 그 분노는 장미 향수를 뿌린 내게로 튀어 날라왔다.

#23

향수 심부름을 했던 전속 하녀는 아버지의 매질을 견디지 못해 결국 내가 페트리크 선생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니스테르 장미 향수를 사오게 심부름시켰다는 사실을 실토했다.
진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분노했다.


" 너는 마리안 트리스테다! 두 왕관의 왕비가 될 몸이다. 그런데 음유시인 나부랭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문의 숙적인 노르예트의 향수를 뿌려? 네가 그러고도 트리스테 가문의 마리안이라고 할 수 있겠냐!"

#24

아버지는 당장 페트리크를 쫓아내겠다고 말했다.
내 사랑 페트리크를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반항했다.
" 전 두왕관의 왕자를 사랑하지 않아요! 왕비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전 페트리크 선생님을 사랑해요. 만약 아버지가 페트리크 선생님을 쫓아내면, 전 집을 나가버리겠어요! "

#25

아버지는 페트리크 선생님을 쫓아내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 앞에서 칼을 뽑아 페트리크의 목을 잘랐다.
머리를 잃어버린 페트리크의 몸이 힘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져 붉은 피를 쏟아내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26

페트리크가 누이 여신의 품으로 돌아간 다음 날 나는 정신을 차렸다.
그때까지 침대 머리맡을 지키고 있던 아버지는 내가 눈을 뜨자 완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 너는 두 왕관의 왕비가 될 몸이다. 다른 어느 외간 남자에도 눈길을 줘선 안 된다. 만약 지금처럼 네가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준다면, 그 남자는 너 때문에 페트리크처럼 목숨을 잃게 될 거다! "

#27

열네 번째 생일에 나는 복수를 다짐했다.
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두 왕관의 왕비로 간택된 후, 아버지가 원하던 것을 얻었다고 여길 때 그 모든 것을 다시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통쾌한 복수라 생각했다.

#28

나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왕비가 되기 위한 공부에 매진했다.
우아한 모습으로 걷고, 말하고, 품위 있는 자세로 숨을 쉬고, 호감 가는 목소리로 대화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춤추고 노래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 몸을 인형처럼 조종해서 귀족과 왕실이 원하는 최상의 모습만을 보이도록 노력했다.

#29

피나는 노력 덕분에 나는 노르예트와 마리안 위어드윈드를 물리치고 두 왕관의 왕세자비로 간택됐다.
아버지는 가문의 영광이 돌아왔다며 기쁨의 환호를 내질렀다.
그리곤, 가문의 품격을 나타낼 수 있는 최고의 왕관을 만들겠다며, 대륙 제일의 보석으로 소문난 ' 태양의 심장 ' 을 마리아노플 경매장에서 사상 최고가에 낙찰받기까지 했다.

#30

가문의 여유 재산의 삼분지 일을 들여서 왕관에 넣을 보석을 사들이고도 아버지의 입에서는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아버지가 원래 이렇게 미소를 잘 짓는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늘 기쁨에 젖어 있는 모습이었다. 기쁨에 젖은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죽은 마르셀 오빠를 떠올렸다.
마르셀 오빠가 노르예트 가문의 장남과의 결투에서 승리했다면 그때도 아버지는 이렇게 기뻐했을까?

#31

아버지는 노르예트 가문이 자랑하는 최고급 유람선인 미리아닉 호를 대여해서 축하 파티를 벌일 계획을 세웠다.
내가 왕세자비로 간택되기 이전이었다면, 노르예트의 유람선을 빌리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겠지만, 지금은 그런것쯤은 사소한 것으로 여기며 최대한 화려하게 파티를 열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나는 내심 미소 지었다.
그 화려한 파티가 아버지를 절망의 나락에 바지게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32

누이아 대륙에서 가장 크고 화려하다는 미리아닉 호에서 수많은 귀족의 참여 속에서 화려한 파티가 열렸다.
나는 그 파티의 주인공이다. 내 머리에는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사들인 태양의 심장으로 장식된 화려한 왕관이 씌어 있다.
왕관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는 탐욕이 가득했다.
저들은 알까?

사실 이 왕관에 붙어 있는 태양의 심장은 모조품이다. 도난을 염려한 아버지가 진짜 태양의 심장은 금고에 넣고, 가짜를 왕관에 장식한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가짜를 향해 탐욕을 내뿜고 있다.

#33

화려한 파티가 절정에 다다를 무렵, 나는 술 취한 사람들을 피해 선상으로 빠져나왔다.
눈앞에 탁 트인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자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세상은 이렇게 넓은데, 나는 왜 '마리안'이라는 굴레 속에서 살아야만 했을까?
마리안으로 태어난 내 운명을 저주하며 나는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미리아닉의 선수상 끝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34

미리아닉의 선수상 끝에서 나는 두 팔을 활짝 벌렸다.
드넓은 창공을 훨훨 날아다니는 새처럼 나 역시도 두 팔을 벌린 채 하늘을 날 것이다. 찰나의 순간에 불과할지라도.
그리고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아 누이 여신의 품으로 돌아갈 것이다. 모든 것을 얻었다고 여기며 기뻐하던 아버지는 왕세자비로 간택된 내 죽음 앞에 크나큰 좌절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때 과연 아버지가 내 죽음을 슬퍼할까? 아니면, 왕세자비의 죽음을 슬퍼할까?

#35

두 팔을 벌린 채 새처럼 날아가려는 순간, 누군가 등 뒤에서 내 몸을 붙잡았다.
누구지?
누가 내 처음이자 마지막 비행을 방해하는 거지?
고개를 돌려 얼굴을 보려는 순간, 매우 익숙하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조심하세요"

#36

낯선 훼방꾼의 목소리는 내게 음악을 가르치던 음유시인 페트리크 선생님의 낮은 음색과 매우 닮아 있었다.
순간 나는 누이 여신의 품으로 떠나갔던 페트리크 선생님이 돌아와 나를 붙잡아준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으며 뒤를 돌아봤다. 그곳엔 페트리크 선생님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잘생긴 미남자가 서있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 이름이 뭐에요? "

#37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잭'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미리아닉의 선원이었다.
투박한 가죽으로 만든 선원 옷을 입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을 빛나는 보석처럼 화려했다.
태양의 심장보다도 더 밝게 빛나는 보석처럼 보였다.

붉은 석양이 세상을 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의 떨림을 느끼며 나는 잭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 역시도 내게 다가왔다.
나는 자연스럽게 눈을 감았다.
영혼을 빨아들일 것만 같이 짜릿하게 느껴지는 입맞춤이 찾아왔다.

#38

미리아닉의 항해는 열흘 동안 계속될 예정이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내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잭과 만나 사랑을 속삭였다.
페트리크에 대한 사랑이 나 혼자만의 짝사랑이었다면, 잭과의 사랑은 서로 함께 나누는 진정한 의미의 첫사랑이었다.
우리는 떨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며 함께 호흡을 나누고 몸을 부대꼈다.
둘만의 시간이 영원히 함께하길 빌면서..

#39

이별의 시간이 점점 가까워져 왔다.
나는 잭에게 나를 마리안이 아닌 '로즈'라고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잭은 나를 마리안이 아닌 로즈라고 불렀다.
잭에게 있어서만큼은 두 왕관의 왕세자비 마리안이 아닌, 로즈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나는 그런 그를 위해 복수를 포기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이 가져다주는 고통을 차마 잭에게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40

아버지가 보관 중인 진짜 태양의 심장과 가짜 태양의 심장을 바꿔치기했다. 진짜 태양의 심장을 잭에게 이별 선물로 줄 생각이다.
잭과 함께 계속해서 사랑을 나눌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버지와 두 왕관의 눈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냥 여기서 잭을 놓아주고, 내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내가 잭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 것 같다.

지금부터는 잭을 위해 복수를 위한 죽음이 아닌 행복한 삶을 고민해야겠다.
" 내 사랑 잭,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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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총 10번 편집 되었으며, 4명이 편집에 참여하였습니다.

최종편집자 : 샤크 @크라켄 | 55레벨 | 사제 | 하리하란 (2016-10-11)
우수편집자 : 쫄복51 @다미안 | 55레벨 | 흑마술사 | 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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